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관한 시의 일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아름다움이 스스로 당신의 길이자 안내자가 되어 주지 않는 한,
당신이 어디서 아름다움을 찾고 어떻게 그걸 발견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아름다움이 직공이 되어 당신의 말을 엮어 주지 않는 한,
당신이 어떻게 아름다움에 대해 논할 수 있겠어요?
(중략)
이 모두 당신들이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것들이죠,
하지만 사실 당신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은 욕구에 대해 말해왔을 뿐,
그런데 아름다움이란 욕구가 아닌 황홀경.
목마른 입도 아니요, 앞으로 쭉 내민 빈손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불타는 마음이나 넋을 잃은 영혼에 가까운 것.
아름다움은 당신이 볼 수 있는 이미지나 들을 수 있는 노래 같은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니 눈을 감았는데도 보이는 이미지와 귀를 닫았는데도 들리는 노래에 가까운 것.
울퉁불퉁한 나무껍질 속에 흐르는 수액도 아니요,
짐승의 발톱에 매달린 날개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영원히 꽃 핀 정원과 영원히 비행중인 한 무리 천사들과도 같은 것.

오르팔리스 사람들이여, 아름다움이란 곧 자신의 성스러운 얼굴에서 베일을 벗은 삶 그 자체.
그런데 그 삶과 베일이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지요.
아름다움이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영원.
그런데 그 영원과 거울이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에요.
-예언자, 칼릴지브란 -

아름다움에도 통용되는 공통의 감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령,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미모의 여성이나
장엄한 대 자연을 촬영한 사진과 같이.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시와 같이 단지 내 욕구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에서
내 일상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커피를 내리는 행위에서도,
일을 하는 와중에서도,
요가를 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갖은 일상의 행위에 내 정신, 즉 맥락을 입혀 그에 따른다면
한 걸음 아름다움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1AN

Minima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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