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ELF-KNOWLEDGE

시는 종종 나에게 경외감을 이끈다. 

불과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의 글로, 

한 권의 책에서 얻을 법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시집 예언자(The Prophet- by Kahlil Gibran)의 한 시를 인용하고자 한다

 

당신의 마음은 낮과 밤의 비밀을 알되 침묵을 지키죠.

하지만 당신의 귀는 당신의 마음이 아는 걸 간절히 듣고 싶어해요.

당신은 늘 생각으로만 알아 왔던 걸 말로도 알려 하죠.

당신 꿈의 벌거벗은 몸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고 싶어해요.

 

당신이 그러는 건 좋은 일입니다. 

당신 영혼이 숨겨진 수원은 굳이 솟아올라 속삭이듯 바다로 흘러가고자 해요.

그러면 무한한 깊이를 지닌 당신의 보물이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테죠.

하지만 그 미지의 보물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 보려 하진 마세요.

그리고 자나 줄로 당신 앎의 깊이를 재 보려고도 하지 마세요. 

자아야말로 무한하고도 무량한 바다니까요.

 

"나 진실을 발견했노라."라고 말하기보다 "나 많은 진실 들 중 하나를 발견했노라."라고 하세요

(Say not, "I have found the truth," but rather "I have found a truth")

"나 영혼의 길을 발견했노라."라고 말하기보다 "나 나의 길위를 걸어가고 있는 영혼을 만났노라 라고 하세요"

(Say not, "I have found the path of the soul." Say rather, "I have met the soul walking upon my path")

영혼은 모든 길 위를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영혼은 한 길로만 걸어가지도, 갈대처럼 위로만 뻗어가지도 않습니다. 

영혼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 마치 무수한 꽃잎 지닌 한 송이 연꽃처럼.

 

졸린눈을 크게 뜨이게 만드는 강렬한 시 한 수였다. 

내 영혼과 자아를 성찰하는 행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나는 무엇이고, 왜 세상에 태어났으며,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등..

이러한 종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요원하다. 

왜냐하면 나의 정체성이나 영혼 그리고 자아는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흐르고 변하기 때문이기에.

한 순간의 내 형질을 포착하여 정의내린 성찰의 결과물은 불과 얼마의 시간이지나지 않아 과거의 것이 되어버리기에.

그리하여 '그 미지의 보물과 내 앎의 깊이의 무게 와 길이를 재 보려고 하지마라'라는 예언자의 말이 크게 다가온다.

 

인용 부분에서 원문을 따로 붙인 행이 있는데,

이는 The 와 A의 대치가 너무 아름답게 이루어졌기에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The truth와 A truth는 관사 한 끗 달라졌지만, 표현 자체로는 엄청난 성찰이 내포되어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후반부의 "영혼은 모든 길 위를 걸어가고 있으니까요"의 부분은 마치 양자역학을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든다.

양자는 '관찰'하기 이전엔 출발지 부터 목적지에 이르는 모든 경로위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관찰하는 순간 단 하나의 경로위에만 존재하게 되는데, 

이러한 양자역학의 행태와 영혼의 경로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의 생각뿐인 것일까. 

 

결국 우리의 영혼은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아성찰이라는 이름 아래에 내 영혼을 관찰하는 행위에서,

한 순간의 취향과 지식 그리고 모습을 토대로

나의 모습을 제단하는 것은

영혼의 무한한 변화의 형태를 부정하고 한 가지 모습으로

정형화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겠다. 

1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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