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지연: 고통스러운 삶을 대하는 적극적인 자세

30대에 접어든 이래로, 

누군가가 나에게 삶에대해 이야기한다면, 

나는 줄곧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삶은 피할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는 과정이야."

이것을 인정하는데에 20대 후반부의 시간을 거의 다 쓴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고통이라는 화두를 꺼내게한 책을 읽게 되었다. 

바로 조던 피터슨의 책인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도

7번째 챕터인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있는 길을 선택하라"이다.

 

삶은 고통이다. 

분명한 사실이고 반박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진실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쫓아내면서 그들에게 내린 저주이기도 하다.

(...)

삶은 비극이고 고통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즉각적이고 이기적인 쾌락을 좇는 삶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되었다. 

(마치 이전의 YOLO나 SWAG, 그리고 지금의 FLEX와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더 설득력있고 매력적인 대안은 과연 없을까?

하나님은 아담과 그 후손에게 원죄의 대가로 노동이라는 저주를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아담은 자신의 존재에 근본적으로 내재한 제약을 깨달았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죽음은 노동을 통해 늦춰진다. 

노동은 '나중에' 얻을 이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행위다. 

노동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동물도 노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본능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아이고, 힘들다. 며칠 쉬면서 여자 친구랑 해변에 놀러가고 싶네'

동물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을 포함한 그런 희생은 심리학적 용어로 말하면 '만족 지연'이다. 

만족을 늦출 수 있다는 발견은 시간의 발견이었고,

시간의 발견은 인과 관계의 발견이었다. 

현실 세계를 상대로 흥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동을 자제하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시간과 장소에서 보상을 받는다.

사회도 이런 방식으로 틀을 잡아왔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인과 관계의 발견이 사회계약을 활성화했다. 

-P238~243 중 요약 발췌-

 

이 단락들을 발췌하면서 문득 얻은 영감이 있다면,

조던 피터슨의 말 처럼 '노동' 혹은 '만족지연'의 방식이

어쩌면 이 고통뿐인 삶을 사는 세련된 방식 중의 하나겠다는 것이다. 

 

어떤형태의 만족지연이든 (그것이 다이어트건, 언어공부이건)

그것을 통해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하며,

오히려 그 고통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성취감을 얻게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15개월전 쓴 에세이는 이를 잘 대변한다. 

https://1ans.tistory.com/56

 

두서없는 7. 나에게 향한 시선

18.08.08 직장생활을 지속하며 느끼는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전화를 받을 때도 나는 이동규가 아닌 노마코리아가 되고. 일을 마쳐 회사를 나올 때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1ans.tistory.com

직장생활 중 찾아온 공허함과 그원인을 짧게나마 생각한 글인데,

모든 만족이 즉각 이루어지는 충동적인 삶에 취해있던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면,

으레 당연히 고통스러웠겠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도 당시의 나와 같은 고민에 휩싸이고 있다면,

당신 자신을 돌보아야 할 사람처럼 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치 자식에게든, 사랑하는 이에게든 내가 돌보고 아끼고 싶은 사람에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처럼말이다.

그러한 과정중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만족지연'은 매일을 충만함과 성취감으로 우리를 채울것이다.

 

1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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