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자비

 

이기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즐거움을 나 자신에게 주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기중심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둘째 유형은 남들을 기쁘게 하는 즐거움을 나 자신에게 주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더 세련된 종류의 이기심이겠습니다.

(...)

자선을 하는 동안 맛본 내적 기쁨을 알고 있죠.
아하! 옳거니! 그런데 그건 “내가 한 일이 뭐 그리 대단할까? 난 뭔가를 했고 뭔가를 얻었지.
선행을 하노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 왼손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몰랐거든”하는 사람과는 반대지요.
선행을 하노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선행만큼 좋은 선행은 없는 겁니다.
자신이 선하다는의식이 전혀 없을 때만큼 사람이 선한적은 없는 겁니다.
혹은 훌륭한 수피교의 말씀대로 “성자란 자신이 성자임을 알기까지 성자”인 겁니다.
무자의식!

(...)

순수한 동기 같은 것이란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보통으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자기 관심에 따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행동이 그래요 .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무엇을 할 때 그것은 자기 관심에 따른 것입니다.

(...)

내가 남들을 즐겁게 하는 즐거움을 나 자신에게 주는 것.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매우 평범한 사람이지만세련된 취미를 가지게 된 겁니다.
아이 적에는 코카 콜라를 좋아했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 더운 날이면 찬 맥주를 즐기는 겁니다.
더 나은 미각을 갖춘 거죠. .
아이였을 때는 초콜릿을 즐겼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교항곡을 즐기고 시를 즐기는 겁니다.
취미가 더 고생해진 거죠.
그러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남을 즐겁게 하는 기쁨인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최악의 유형이 있는데, 혐오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선을 행하는 때입니다. 
(...)
나쁜 느낌을 가지지 않으려고 무언가를 할 때야말로 가장 나쁜 종류의 선행입니다.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할 용기가 없는 겁니다.

남에게 상처 입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특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처 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상처받기는 원치 않습니다.
자신이 속상할 테니까.
아, 그렇죠 .
우리가 상처를 입히면 남들이 우리에 대해 나쁜 견해를 가질 테니까.
우리를 싫어하고 비난하게 될 테니까.
우리는 바로 그게 싫은 겁니다! 

-출처 깨어나십시오 (엔서니 드 멜로 저)

종교를 갖고있지 않지만, 

영성에 대한 관심은 줄곧 갖고있었다. 

우연히 접한 다른 책의 저자가 아침마다 꼭 읽는 책이라는 소개글로 만나게 된 멜로 신부의 ‘깨어나십시오’는

내 아침 역시 뒤바꿔 놓은 좋은 습관을 나에게 주었다. 

 

영성이란 것은 종교와 결부짓지 않아도 된다는 신부의 말과 함께, 그가 제시한 여러 묵상의 개념들과 그의 사고를

조금씩 따라가는 맛이 일품이다.

 

오늘 본 에세이는 ‘자비의 허상’이라는 약 5페이지 되는 짧은 글이었다.

선행의 내적 동기는 이타적 이기심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을 곱씹어보면,

나의 여러 행위들 역시 나의 선함을 자각하기 위한 ‘취미로서의 선행’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대개 이타적인 행위를 할 때면 이것이 내 사명인 듯 경건한 마음으로 행하던 것들을 

즐거움을 얻기 위한 고상한 취미로 바꾸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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