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 없는 도달과 이룸

 

 

의도치않게 하나의 토픽에 집중하게 되면, 

온 세상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제 보았던 습관에 관련한 책을 보며 큰 영감을 얻게 되었는데, 

골자는 이렇다. 

어떠한 행동의 동기는 그 행동의 목표가 되는 것이 나에게 줄 보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목표 지향적인 동기와 행동의 지속력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그 동기가 된 영감이 발로가 된 모든 일련의 행위는 끝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을 하겠다 (to do)’에 집중하는 만큼 ‘~한 사람이 되겠다 (to be)’에도 헌신해야 한다.

즉, 행동의 영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스스로 정의하는 나의 인간상’ 인 것이다. 

가령 5킬로그램 감량을 원한다면 이에 따른 행동으로 식이요법을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습관은 5킬로그램 감량을 달성하는 순간 그 동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요요가 찾아 올 확률이 높다.

다만, 내 몸을 사랑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견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삶에 녹여내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부터 몇 kg을 감량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통해 그간 접해왔던 ‘이미 목표를 이룬 사람 처럼 행동하라’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행동만 목표를 이룬사람 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마인드-가치관-인간상을 

나에게 프로그래밍하여 적용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목표 지향적이게 되면 집착의 여지가 생긴다.

휴일에 우리는 인적이 드문 자연풍광이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자하는 욕구를 발견할 때가 있다.

아마 ‘평화와 고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믿기 때문이 아닐지. 

그런데 행복의 조건화된 환경인 ‘평화와 고요’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을까.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황만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목표 지향적이란 것은 목표라는 조건화된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에 쏠려있는 신경과 정신을 이완 시키고, 

그저 흘러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어떠할까.

무언가 목표로 삼아 얻고자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도달했다는 흐뭇함을 원하는 것이게 된다.

 

그저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어가자. 

정량적인 목표는 단지 지표일 뿐이다. 

길의 끝에 그러한 목표가 서 있는 것 보다 

길을 걸어가는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에 집중하자.

언어를 배우고, 운동을 배우면 느끼듯이 

자각하지 못한 때에 내가 원하던 수준에 도달함을 우리는 알고있다.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에 이루고, 도달해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위대한 삶의 흐름에 맞추어 춤추고 있음에 감사하고 한 없이 겸손해짐을 느껴보자.

 

 

 

 

 

 

 

 

 

 

 

 

 

 

 

 

1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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