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없는 11. 상 (Image) / 잡설

2017. 08. 17


오래전 적어둔 글을 발견하여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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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닌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상'이라는 단어가 화두에 올랐다. 

이 상은 Image와 의미가 비슷하다. 저마다 갖고있는 Image들이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보거나 듣는 일은, 즐겁고 동기가 부여된다. 


나도, 그리고 누구라도 마음속에 자기자신에 대한 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득 과거에 그리던 미래의 나의 상에 대해 생각하다가, 지금 이순간이 과거에 그리던 그 시점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첫 직장에서 자립하여 나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는 나의모습을 과거에 그리던 상과 비교해봤을 때, 일치하는 부분도, 도달하지 못한 부분도 공존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요가는 여전히 쉽지 않다. 자세를 따라만하기에도 땀이 줄줄 흐른다. 

수업의 형태를 빌어 수련한다는 것은 혼자서는 해내지 못할 것들을 성공하게 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에서 내면은 치열히 견디고 도전하고 있다. 

굽은 무릎을 다시 펴내고, 들어올린 다리를 내리고 싶은 유혹을 견뎌내며 한 숨 한 숨 호흡에 신경을 쓰다보면 현재의 순간에 충실해지는 때가 온다. 

그 순간에는 미래의 걱정도, 과거의 후회도 잊혀진다. 

집중할 것은 오로지 '나'일 뿐이다. 


지금은 새벽 5:40분이다. 의도치 않게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루어낸 많은 것들은 의도치 않은 것들이 많을 것 같다. 

아니면 그저 평범한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책상 위에 흐르는 조용하고 신비한 피아노 선율이 나의 마음을 새롭게 조율한다. 

분명한 것은 나의 마음을 낚아채는 멜로디의 흐름 또는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주욱 늘어놓고 듣다보면 사소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내 주변의 것들은 반복의 연속일 수 도 있다. 


새로움을 찾는 일은 우리안에 내재된, 혹은 이 사회가 YOLO라는 미명하에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플레이리스트의 노래가 익숙해질 즈음 새로운 노래를 검색하여 듣기도 한다. 

새로운 노래는 정말 새로운 노래일까? 

누구나 좋아하는 장르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힙합과 재즈가 그것인데, 새로운 노래를 찾겠다고 검색을 시작하면, 먼저 저 두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있다. 

즉, 나는 익숙한 재즈와 힙합을 꾸준히 반복해서 듣는 것이다. 

한 곡 한곡 다름음악이었어도, 나는 줄곧 같은 장르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 음악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1AN

Minima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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