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이 순간 내 삶에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변화의 단초는 바라보면 무겁고, 쉽지 않아보여 잡기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로 변화의 시작인 셈이다.
일상에 새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하는 것.
가령 오후 10시 경, 아프리카 TV를 보는 대신 이 글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글의 목적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단지 흐르는 생각 속에서 현재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지금의 마음과 몸의 상태를 나의 주관으로 객관적이게 바라보려는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오늘 내 방의 전신 거울 앞에서 바지만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 가감 없이 적나라한 나의 몸을 바라보며 오늘 만큼은 실망보다는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 몸의 변화를 기록 해 나가는 것이다.
하루하루 사진을 찍으며 변하는 나의 모습을 체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순간 두 가지 변화가 시작되었다.
일일신 우일신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자와 그 정확한 의미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날마다 새롭게 거듭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월요일, 그제는 요가수업에 처음 나가 보았다.
Higher Self라는 동영상을 보며 요가에 관심이 생겼고, 행동으로 옮겨 수업을 들으러 간 것이다.
요가는 내 생각 만큼 정적이었지만, 내 생각보다 힘든 수련이었다.
한 마디로 유연성 뿐만이 아닌, 버티는 힘도 요구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의 집중 상태를 유지 하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동작들과 근육이 당겨지며 느껴지는 감각, 그리고 다른 여성 수련자들을 보기에 민망했던 나의 마음까지도 살펴보기 위해서.
요가 수업의 말미는 명상이었다.
느껴지는 고양감에 내가 이 수업을 잘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쉬이 어떤 단어들로 구성된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문장으로 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매일 좋아하는 일을 떠올리거나 상상하곤 한다.
나의 경우 -- 은은한 황색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글자를 쓰는 펜의 그림자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나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글을 쓰는 것-- 이 좋아하는 것과 같다.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구태여 실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의 관심이 그것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내일은 새로운 새로움을 더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은 채우는 것 혹은 무언가를 쌓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시간은 언제나 그 총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은 곧 익숙했던 어떤 것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일은 다섯시에 일어나보자.
비가 오지 않는다면 석촌호수를 뛰어보자.
어쩌면 호수를 달리는 일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일 수 있다.
나의 필터링에 의하면 말이다.
만일 비가 그치지 않는 다면, 새벽 같이 회사에 나가는 것도 좋겠다.
이 또한 내가 전에 하지 않았던 일이기에.
회사에서 독서를 해 보아야지.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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